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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평생을 따라다닌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얼마 전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오래전에 무심코 던진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미 잊은 말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렇게 오래 살아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어떤여성이차에기대어서있다.

    사창가에 팔린 여자가 살아남는 법

    뭄바이의 오래된 홍등가 카마티푸라. 이곳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실존했던 공간입니다. 영화는 이 장소에서 실제로 살았던 여성, 강구바이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 저는 솔직히 발리우드 특유의 과장된 연출에 살짝 거리를 뒀습니다. 그런데 도입부부터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좋은 집안 출신의 강구바이는 발리우드 배우의 꿈을 품고 남자친구와 함께 뭄바이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 남자친구는 그녀의 전 재산을 빼앗고 사창가에 팔아버립니다. 여기서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강구바이를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트라우마(trauma)란 단순히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개인의 자아와 대응 방식에 남기는 심리적 흔적을 의미합니다. 강구바이는 그 흔적을 안고도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여성으로 살아남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고, 주변을 변화시킵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핵심 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성 착취(sexual exploitation) 구조 속에서 개인이 주체성을 되찾는 과정
    • 사회적 낙인과 싸우는 여성의 정치적 각성
    • 타인의 미래를 위한 자기희생의 의미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 강제 성 착취 피해자의 약 99%가 여성과 소녀입니다(출처: 국제노동기구). 영화 속 강구바이의 이야기가 단지 한 사람의 서사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피아와 손잡고, 마담이 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강구바이가 혼자 뭄바이 마피아 보스 라힘을 찾아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손님에게 폭행당했지만 유곽 주인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고, 강구는 직접 움직입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두려움보다 분노가 앞선 사람만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스템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권력의 언어로 접근하는 방식, 그게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라힘은 강구바이의 편이 되어주고, 이후 동료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그녀는 흰 사리를 입으며 마담바이로 거듭납니다. 여기서 마담(Madam)이란 홍등가에서 여성들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여성 실력자를 뜻합니다. 단순한 관리직이 아니라 그 공동체 안에서 법도 경찰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강구바이가 처음에는 마담 자리를 거절한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권력이나 지위를 손에 넣으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 같지만, 영화는 그 자리를 떠밀리듯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립니다. 저는 그 선택이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선거, 사랑, 그리고 포기

    강구바이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정치 도전입니다. 연임에 도전하는 강력한 현직 후보를 상대로 지역 대표 선거에 나서고, 열세에 놓이자 라힘에게 정치 자금을 지원받습니다. 정치 자금(political funding)이란 선거 운동, 유세, 홍보 등을 위해 조성되는 자금을 말합니다. 현실에서도 이 자금의 출처가 선거 결과와 이후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강구바이가 마피아 보스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구조, 그 자체가 이미 사회 비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 재단사 조카 아프샤가 강구바이에게 첫눈에 반하고, 강구바이도 호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옥상에서 새장 안에 갇혀 있던 소녀를 본 순간, 강구바이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매춘부의 딸이 언젠가 같은 삶을 강요받을 것을 알기에, 그 소녀의 미래를 위해 막대한 재물을 들여 아프샤와 혼인을 치러줍니다. 자신의 사랑을 내려놓고. 제 경험상 이런 장면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 쉬운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카마티푸라 역사상 처음 열리는 결혼식이라는 설정이 그 희생에 무게를 실어줬습니다.

    연설문을 찢은 이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강구바이의 연설입니다. 카마티푸라 철거를 막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그녀는 기자가 써준 연설문을 받아 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찢어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말합니다.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이란 특정 집단에 대해 사회가 부정적인 편견을 부여하고 그것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강구바이가 싸운 것은 철거가 아니라 바로 그 낙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외면하는 사람들에게도 지켜내야 할 삶이 있다는 것, 그것을 그녀는 목소리로 증명합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성 착취 구조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사회 재통합을 위한 지원이 법적·정책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출처: UN Women). 강구바이는 그 어떤 제도적 지원도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 그 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이야기가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12년 만에 용기를 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차가운 반응을 듣는 장면도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선거에서 이겨도, 지역을 지켜도, 가장 가깝고 싶은 사람에게 닿지 못하는 그 감정은 지위나 성취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를 묻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가, 하고요. 인물의 출발선이나 환경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이 영화는 조용히 권유합니다. 화려한 발리우드 연출 뒤에 이렇게 묵직한 질문이 숨어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 번쯤 시간을 내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3mswn5Jy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