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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영화라면 으레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디 업사이드》는 보는 내내 예상을 계속 빗나갔습니다. 억지스럽지 않은데 따뜻하고, 진지하지 않은데 묵직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다 보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뻔할 것 같았던 설정, 왜 달랐을까
전신마비 억만장자와 전과자 출신 간병인. 솔직히 이 설정만 보면 어떤 영화인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신가요? 저도 처음에는 뻔한 감동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고 큰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그런데 오프닝 장면부터 예상이 무너졌습니다.
영화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카타르시스란 감정이 극도로 고조된 후 해소되면서 얻는 정서적 정화 경험을 말하는데, 많은 감동 영화들이 이 공식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그런데 《디 업사이드》는 그 공식을 거부합니다. 눈물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고, 웃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먹먹해지는 방식입니다. 주인공 델이 구직 면접에서 보여주는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가 오히려 필립의 마음을 열었다는 설정도 그렇습니다. 사회복지사 출신 지원자들이 장애인 필립을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안, 델만 그를 그냥 한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게 때로는 예의 바른 척보다 솔직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만들어지는 방식
관계의 시작이 어색한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초기 마찰이 인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델은 24시간 상주 간병이라는 역할을 맡으면서도, 처음에는 필립의 장애를 마주하는 것 자체에 당황합니다. 그런데 그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영화는 공감 피로(compassion fatigue)라는 심리 개념과 정반대 방향을 선택합니다. 공감 피로란 타인의 고통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지거나 지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기존 간병인들이 필립을 '케어 대상'으로만 보는 동안 오히려 지쳐갔던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델은 처음부터 필립을 케어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 상대로 대했고,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실질적인 교류가 생겼습니다. 필립이 델에게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아내를 잃은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은 영화의 전환점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유독 마음이 걸렸던 건, 필립이 자신의 상처를 말할 때 동정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랐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델이 그 자리에서 위로의 말 대신 그냥 옆에 있어줬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 더 와닿았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깊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필립이 델을 장애인의 간병인이 아닌 대등한 존재로 대우한 것
- 델이 필립에게 금기시되던 자극과 즐거움을 솔직하게 제안한 것
-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것
- 외출과 일상 경험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나눈 것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 어떻게 달랐나
많은 영화들이 장애를 다룰 때 비장애 캐릭터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장애인 캐릭터는 비장애인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영화 비평 용어로 인스피레이션 포르노(inspiration porn)라고 합니다. 인스피레이션 포르노란 장애인의 삶을 비장애인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콘텐츠로 소비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개념입니다.
《디 업사이드》는 이 함정에서 상당히 자유롭습니다. 필립은 전신마비 상태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유머를 구사합니다. 장애가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애인 캐릭터가 이렇게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장애인의 삶의 질과 심리적 안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당사자를 동등한 주체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장애인의 자존감과 사회 참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장애인개발원). 델이 필립을 그냥 한 사람으로 대했던 방식이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릴리와의 관계에서 필립이 보여주는 감정도 현실적입니다. 자신의 장애가 상대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관계를 스스로 끊어내는 장면은, 장애 당사자가 일상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을 꽤 섬세하게 포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말이 남긴 것, 그리고 영화가 말하려는 것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보면 예측 가능합니다. 갈등이 있고, 화해가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회복의 방식이 독특합니다. 델이 필립에게 선물하는 것이 물건이나 말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아내를 잃은 사고의 원인이기도 했던 패러글라이딩을 다시 함께한다는 설정은 트라우마 노출 치료(exposure therapy)와 닮아 있습니다. 트라우마 노출 치료란 과거 고통스러운 경험과 연결된 대상에 점진적으로 다시 노출됨으로써 그 감정적 무게를 줄여나가는 치료 방식입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회피보다 직면이 장기적으로 심리적 회복에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필립이 패러글라이딩을 다시 경험하는 장면이 단순한 감동 연출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서사적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따로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도운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델은 필립에게서 책임감과 삶의 진지함을 배웠고, 필립은 델에게서 삶의 활력과 솔직한 시선을 되찾았습니다. 이 교환이 영화 전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쌓여갔기 때문에 결말이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힘든 하루 끝에 '그냥 따뜻한 영화 한 편'이 필요할 때 《디 업사이드》를 권하고 싶습니다. 큰 사건도, 충격적인 반전도 없지만, 보고 나면 곁에 있는 사람 한 명이 다시 보이는 영화입니다. 저는 그게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